글보기
제목숲이 부른다 - 류동림2017-10-10 16:12:20
작성자
첨부파일KakaoTalk_20161229_144039872.jpg (156.2KB)KakaoTalk_20161229_144041899.jpg (271.5KB)



숲이 부른다

류동림

 

신 영 복 선생의 작품은 글, 글씨, 삽화 이 셋 중에서 어느 것도 뒷자리에 세울 수 없을 만큼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더불어 숲이라는 신 선생의 저서 제목처럼 함께 있어서 서로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나 보다. 선생의 작품마다 간단명료함 속에 진리가 들어 있었다.

신 선생께서 영어(囹圄)의 생활을 마친 뒤에 우리 마을 곁에 있는 대학에서 근무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뻤다. 그처럼 맑으면서 강직한 영혼을 가진 분과 가까운 이웃에서 산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20년에 가까운 억울한 옥고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책에는 어느 한 구석도 원망과 남 탓이 보이질 않는다.

내세울 것 없는 이 고장에 선생의 함자가 붙은 공원이 생겼다니 더욱 뿌듯했다. 우리 동네 수목원과 선생이 근무한 대학 사이의 뒤편에 있는 뒷동산에 신 영 복 선생이 손수 쓰고 그림까지 그린 서화(書畫) 30여점이 나무 안내판에 새겨져서 숲길가에 세워졌다. 동산 숲길엔 선생의 책 제목을 딴 더불어 숲길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그 서화들 중 하나엔 <피아노의 흑과 백은 반음의 의미를 가르칩니다. 대립보다는 동반을 일깨우고 화음과 조화의 방법을 이야기 해줍니다.>라고 씌어 있다. 일상적인 것에서 소중한 의미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두 노인이 땅바닥을 들여다보는 그림입니다. 이들은 목수였습니다. 목수가 그린 집 그림은 순서가 주춧돌부터 그리기 시작하고 맨 나중에 지붕을 그렸습니다. 우리들과는 그 순서가 반대였습니다. 책과 교실과 학교에서 생각을 키워온 우리들과는 딴 판입니다.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나 친구들이나 집 그림을 그릴 때 모두 지붕부터 그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넘겨버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거기에서 어떤 영감까지 떠올리다니... 인간에 대한 그 분의 이런 예리한 관찰력과 독창적인 상상력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계속 재확인되었다.

동산 산길은 아래 부분엔 경사가 꽤 있다가 위로 오를수록 완만해져 한결 걷기에 편해진다. 그 완만해질 즈음에 나타나는 서화엔 산 그림이 있다. 아담한 동산이나, 그 동산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길이나, 신기하게도 이 실제 동산을 빼닮았다. <구도(求道)는 곡선이기를 원하고 더디기를 원합니다. 구도는 도로의 논리가 아니라 길의 마음입니다. 도로는 속도와 효율성이 지배하는 자본의 논리이며, 길은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동행하는 인간의 원리입니다. 우리는 매일 직선을 달리고 있지만 동물들은 맹수에게 쫓길 때가 아니면 결코 직선으로 달리는 법이 없답니다.>

나는 지금 도로가 아닌 을 걷고 있다. 느리게 걸으면서 내 눈과 마음을 나무와 꽃과 흙, 그리고 신영복 선생의 아름다운 글과 그림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이 산책길 정수리쯤에 정자 하나가 있다. 긴 의자 몇 개가 둘러있고 지붕이 있어 그늘도 만들어주고 비가 올 땐 비도 막아준다. 이곳에도 서화 두 점이 있다. 편하게 앉아 쉬면서 감상하는 두 편은 언제나 가장 오래 반복해서 읽게 된다. 읽어 마음에 담아 내려가면 영양가 높은 음식을 꼭꼭 씹어서 섭취한 것처럼 든든해진다. 정자를 정점으로 옆구리로 난 길을 통해 하산 길로 접어든다. 걸음마다 통나무가 발을 받쳐주어 미끄럽지 않게 잘 내려올 수 있게 되어 있다. 그처럼 세심한 배려를 한 손길이 고맙게 느껴졌다.

더불어 숲길을 오르다보면 여기저기에 폐목(廢木)이 나무를 기대고 보기 좋은 모양으로 쌓여있다. 그런 장작은 벽난로에 불을 피우기에 제격이다. 그것을 볼 때마다 예전에 읽었던 문학책이나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난로 위에선 커피물이 끓고 안주인은 흔들의자에 앉아 음악 감상이나 독서를 한다. 이런 장면은 어린 시절엔 상상속의 로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엔 아무 감흥이 안 느껴져서 허탈함으로 다가온다. 요즘은 폐목이 여기저기 쌓였어도 누가 가져가는 사람이 없다. 내가 사는 빌라에도 페치카 설비를 갖춘 집이 많지만 그걸 실제 사용하는 집은 별로 없다. 재를 치우기 귀찮고 연기가 싫어서 그렇다고 한다.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가치관이 제각각 다르겠지만, 신 선생께서 지향했던 가치관은 색도 빛도 바래지 않고 오래 갈 것 같다.

나는 큰 일이 없는 한 매일 더불어 숲길을 다녀온다. 이 길을 걸을 때도, 길에서 멈춰 서서 서화를 읽고 볼 때도, 벤치에 앉아 쉬며 방금 본 서화를 곱씹어 볼 때도 행복하다. 때론 서화마다 일일이 다 안 읽고 그냥 지나치더라도, 서화가 언제나처럼 든든하게 옆쪽에 서있다는 사실을 곁눈질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뿌듯하다. 서화 속에 담겨있는 선생의 진정성이 숨결로 내게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다.

전에는 수목원 한편에 있는, 소로우를 생각나게 하는 한적한 호수가 더 좋았다. 더불어 숲길이 생긴 지금은 선생께서 손수 쓴 글씨와 그림 그리고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글귀를 산책하며 만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우리 마을에 이런 의미 있는 소중한 선물을 남긴 선생께 고마울 뿐이다. 그리고 그 숲길 공원을 조성해준 구로구청 분들에게도 감사하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