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송경용신부님 페이스북 글_신영복 아카이브 인터뷰관련2018-07-30 16: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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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걷는교회 예배가 끝나고 사단법인 더불어숲식구들이 인터뷰를 하자며 찾아와 신영복 선생님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 선생님 관련된 인물들을 통해 미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도 모으고 공개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개인 소장 작품들도 파악하는 아카이빙 작업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울러 더불어숲이 어떤 방향으로 가면 좋겠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원봉사로 움직이는 더불어숲 멤버들에게 고마웠다. 멤버들 대부분이 2000년대 이후 선생님과 관계를 맺은 분들이라 1988년 출소부터 2000년까지의 이야기는 책으로만 알고 있는 분들이어서 그때의 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평소에는 잊고 지내던 선생님과의 에피소드들도 떠올라 내가 더 즐겁기도 했지만 가끔은 울컥하기도 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특별히 92년 어느 날 권낙기 선생과 노태훈 당시 민가협 간사가 봉천동 나눔의 집으로 불쑥 찾아와 신영복 선생님이 내 제자인 송경용 신부를 찾아가면 부탁을 잘 들어줄거라고 해서 찾아왔다며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날 바로 두분과 함께 온양으로 내려가 출소 후 신원보증인과 보호자를 못 구해서 다시 폐쇄 요양원에 갇혀 계시던 33년 장기수 두분(김석형, 조창손 선생)을 모시고 왔고 동행한 김동원 감독이 그 장면부터 이후 10년을 기록하면서 '송환'이라는 다큐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신영복 선생님이 "봉천동 산동네 나눔의집이라는 곳에서 일하는 송경이라는 내 제자를 찾아가면 다 잘 될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던 그 '신뢰'가, 힘들 때마다 연구실로 찾아뵈면 차를 타 주시고 재떨이를 꺼내놓으시고는 "같이 담배 한 대 태우자!"시며 맞담배를 허락하시던, 피곤에 절은 내 몰골을 보시고는 여기 긴 의자에 누워 편하게 한 잠 자고가라시며 연구실 밖으로 나가주시던 그 사랑과 신뢰에 보답하지 못한 지난 날들이 떠올라 눈물이 나올뻔 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글씨를 부탁하면 부탁드린 것 보다 더 많은 글씨를 내어주셨고, 어느 날은 어깨가 아프셔서 글씨를 못 쓰겠으니 집으로 오라는 말씀을 듣고 댁으로 찾아뵈었더니 안방 장롱 깊숙한 곳에서 당신이 감옥에서 쓰셨다는, 당신 스스로도 특별히 귀히 여기시던 글씨들을 꺼내주시기도 하셨는데...

더불어숲 식구들에게 신영복 선생님을 <거대한 전환>을 쓴 칼 폴라니와 비교하며 몇가지 부탁 말씀을 드렸다. 사상가로서의 신영복 선생님을 연구하고 조명해달라, 신영복 선생님이 몇가지 이미지로만 알려지고 소비되는 것 같다. 중산층 이상의 언어로 갇히는 것 같다. 특정 그룹에게 독점되는 듯한 모양은 결코 선생님이 원하시던 바가 아닐 것이다. 학문에는 천학비재이지만 두분을 읽어본 바로는 신영복 선생님의 사상적 넓이와 깊이가 칼 폴라니와 잘 조응 할 것 같다, 핍박과 배제, 소수자로서의 삶의 여정, 자본주의라는 비인간적 체제와 물신적 사회를 극복하고자 했던 학문적 관점과 저작물들, 경제학으로 시작해서 사상가로서 우뚝 선 일생이 비슷하다. 아울러 학과 예를 겸비하셨던 분으로서, 핍박과 고난이라는 비슷한 삶의 여정에 굴하지 않고 시대를 뛰어넘는 경지를 보여준 추사 김정희 선생과의 비교연구도 해줄 것을 당부드렸다.

마지막으로 더불어숲 식구들이 고난받는 사람들, 힘 없는 약자들곁에 신영복 선생님을 가슴에 품고 서 있어주기를 당부드렸다.

선생님,
선생님 글씨를 제일 많이 팔아먹고도 아프시고 힘드실 때 제대로 찾아 뵙지도 못했습니다. <걷는교회> 한다고 말씀 드렸을 때 너무 잘 했다고 칭찬해주시며 꼭 같이 걸으시자고 하셨는데 편찮으시기도 하셨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에는 모시지 못했습니다.
생각할수록 죄송한 일뿐입니다. 1988년 너무나 날카로워 온몸에 전율이 일던 선생님 글씨를 먼저 보고 얼마 후에 쎄실 극장 앞에서 선생님을 처음 뵈었었지요. 지금의 저보다 10년도 더 젊으셨을 때이었지요. 늘 죄송한 생각뿐이지만 선생님을 뵌 것이 제 인생에서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사람과 역사, 이론과 철학과 사상이라는 것, 삶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너무나 완벽하셔서 선생님 단점은 못하시는 것이 없고 겸손하시기까지 하신 것이라고, 그래서 비인간적이라는 농을 드렸을 때에도 특유의 웃음으로 아니야, 아니야 하시며 당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었는지, 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그 과정에서 스승이 되어준 분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를 차근 차근 설명해 주셨지요.

정말 모처럼 선생님 말씀을 나누었네요.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선생님이 주신 사랑, 글씨도 잘 간직하면서, 저를 믿고 같이 일해보라며 보내주셨던 당신의 감옥 제자들과도 잘 지내보겠습니다. 제 나름대로 힘껏,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감옥 없는 세상에서 평안하십시오!!

**아래의 부채는 신영복 선생님 글씨 제자이자 노동대학원 제자인 바람 이상필 선생의 작품, 지난 촛불 때 광장에서 수 많은 분들에게 글씨 나눔을 하셨던 분이지요. 오늘 인터뷰 기념으로 선물해주셨네요.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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