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09. 23. 샘터찬물 편지 - 47 |

환절기에 찾아오는 감기
환절기에는 거의 빠짐없이 감기 한 차례씩 겪습니다. 감기는 물론 걸리지 않는 편이 좋지만 걸리더라도 별 대수로울 것이 없습니다. 빤히 아는 상대를 만난 듯 며칠짜리의 어떤 증세를 가진 것인지 대강 짐작이 가기 때문입니다. 그때뿐이고 속만 긁는 감기약 먹는 법 없습니다. 신열과 몇 가지의 증세, 그리고 심한 피로감까지 고스란히 받아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 잔 먹은 주기(酒氣)를 느끼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아직 그런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감기가 허락하는 며칠간의 게으름만은 무척 흐뭇하게 생각합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자는 배짱으로 책은 물론 자잘한 일상적 규칙이나 이목들도 몰라라 하고 편한 생각들로만 빈둥거리는 며칠간의 게으름은 여간 흐뭇한 것이 아닙니다. 징역살이에는 몸 아플 때가 제일 서럽다고 하지만 내 경우에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감기 핑계로 누리는 게으름은 도리어 징역 속의 긴장감을 상당히 느꾸어줍니다. 특히 회복기의 얼마 동안은 몸 구석구석에 고였던 나른한 피로감 대신 생동하는 활력이 차오르면서 머리 속이 한없이 맑은 정신 상태가 됩니다. 이 명쾌한 정신 상태는 그동안의 방종을 갚고도 남을 사색과 통찰과 정돈을 가능케 해줍니다. 환절기의 감기는 편한 잠자리의 숙면처럼 그 자체가 깨끗한 휴식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아침, 또 하나의 출발을 약속합니다.
_<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감기로 며칠 고생하고 있습니다. 아플 겨를도 없이 바쁜 시간이건만 이내 몸이 견디지 못하고 그만 고장이 났습니다. 어쩌면 쉬어 가고 싶은 마음 한 자락 들켜 몸으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록이 지쳐 단풍들어간다는 가을 초입, 몸과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땐 잠시 일상을 내려두고 쉬어 가시길 권합니다. 쉼으로 새로운 아침, 새 출발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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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9. 15. 샘터찬물 편지 - 46 |

초상화 그리기 자유롭고 올바른 생각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리를 가두고 있는 문맥을 벗어나야 합니다. 문맥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갇혀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당대의 문맥을 깨닫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중세
사람들은 중세 천년동안 마녀 문맥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우리시대의 문맥을 깨달아야 합니다. 탈문맥과 탈주 이것은 어느 시대에도 진리입니다. _네이버포스트 <신영복의
언약> 제22화 적폐를 청산하고자 함은 갇혀있는 우리시대의 문맥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에서 시작된 일이겠지요? 그러나 모두의 뜻을 모아 함께 달려보려는 꿈은 먼 훗날에나 이루어질 일이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대단한 사람이 탈문맥과 탈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탈문맥과 탈주를 해내는 사람이 대단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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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9. 08. 샘터찬물 편지 - 45 |

평화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신동엽의
시) 평화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평화가 길입니다. _<처음처럼> 중에서 많은 설명이 필요없는 주제입니다. 평화, 반드시 지켜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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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9. 01. 샘터찬물 편지 - 44 |

니토 위에서 쓰는 글 다시 출발점에서 첫발을 딛고 일어선다. 시야에는 잎이 진 나목 위로 겨울 하늘이 차다. 머지않아 초설에 묻힐 낙엽이 흩어지고 있는 동토에, 나는 고달픈 그러나
새로운 또 하나의 나를 세운다. 진펄에 머리 박은 니어의 삶이라도 그것이 종장이 아닌 한 아직은 인동한매의
생리로 살아가야 할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다. 지금부터 걸어서 건너야 할 형극의 벌판 저쪽에는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이 등댓불처럼 명멸한다. 그렇다. 일어서서 걸어야 한다. 고달픈
다리를 끌고 석산빙하라도 건너서 "눈물겨운 재회"로
향하는 이 출발점에서 강한 첫발을 딛어야 한다. _《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1969년 11월 선생님께서
무기징역살이를 시작하면서 쓰신 글입니다. 이렇게 20년 20일을 살고 바깥으로 나오셨지요.
바깥. 새로운 만남, 모든
혁명이 시작되는 곳. 그곳에서 선생님과의 만남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왔는지...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새로운 또 하나의 나를 세워보고 싶습니다. |
| 2017. 08. 25. 샘터찬물 편지 - 43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저는 자본주의가 자기 증식을 하면서 국민경제 내부로는 독점으로
귀결되고,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일국 패권의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로 귀결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적 필연성을
늘 비판해 왔습니다. 제가 동양고전과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를 대비시키는 이유는 감옥에서 동양고전을 많이 읽기도 했지만, 이런 패권적이고 존재론적인 패러다임의 압도적 포섭에도 불구하고 소비나 소유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양 고전에서 발견한 것은, 삶의 궁극적 가치는 ‘인성(人性)의 고양(高揚)’이란 점입니다. 물질적 성취가
아니라 인간적 성취가 더 높은 차원의 가치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적 성취는 인간관계로 결실되는
것이지요. 훌륭한 사람, 훌륭한 사회, 그리고 훌륭한 역사의 문제로 연결되는 것이지요. 근대사회의 전개과정이 보여 온 존재론적 패러다임을 관계론적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이 오늘의 문명사적 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고전을 읽는’것이 아니라 ‘고전에서
배우겠다는 관점’이 고전의 기본 독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21세기로 전환되는 새로운 시대에는 문명의 패러다임에 대한 자각적인 반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동양의 오래된 관계론적인
사상을 통해서 현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존재론적 패러다임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지요."
_<손잡고더불어>중에서 청년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방황하고, 70세 노년은 삶을 부지하기
위해 노동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수많은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되고 있지만 인간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기계와 경쟁하며 더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리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당장은 먹고 살아야 하기에 현실의 덫을 벗어나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만,
결국은 물질적 성취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문명의 패러다임에 대한 성찰을 통해 ‘나’와 ‘너’가 아닌 ‘우리’로 나아가는 관계론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열쇠라고 믿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만 곧 가을이 다가옵니다. 올
가을에는 동양고전을 함께 읽으며, 현실의 덫을 깨트릴 커다란 망치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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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8. 17. 샘터찬물 편지 - 42 |

공감 공감, 매우 중요합니다. "아!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이것은 가슴 뭉클한 위로가 됩니다. 위로일 뿐만 아니라 격려가 되고 약속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삶이란 그렇게 짜여 있습니다.
_<담론> 중에서
나이가 자꾸 들어가면서 학창시절에 그렇게 친했던 친구와도 자꾸 만남의 횟수가 줄어 듭니다. 그러다 보니 그 친구와도 1년에 한두번 만나면 어색한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서로 공감할 것이 자꾸 줄어 듭니다. 그 친구와 서로 같은 마음과 꿈을 가졌던 옛날이 자꾸 그립습니다. 옛날 우리가 가졌던 그 가슴 뭉클했던 위로와 공감을 우리는 어디에서 다시 찾을까요? 물질과 돈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되어 늘 고민하고 삽니다. 공감이 그만 고민이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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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8. 11. 샘터찬물 편지 - 41 |

빗속 우리는 무릎 칠 공감을 구하여 깊은 밤 살아있는 책장을 넘기기도 하고, 작은 아픔 한 조각을 공유하기 위하여 좁은 우산을 버리고 함께 비를 맞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타산(他山)의 돌 한 개라도 품속에 소중히 간직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무심한 일상을 질타해 줄 한 줄기 소나기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입니다.
_<처음처럼> 중에서 폭염이 계속되는 날들이라 시원한 빗줄기를 고대하며 하늘을 쳐다보곤 합니다. 하지만 무심한 일상 속에서 한 줄기 소나기 같은 일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각자의 몫이겠지요.
무더운 여름날, 가족들과 벗들과 시원한 시간들을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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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8. 03. 샘터찬물 편지 - 40 |

장마철의 개인 하루 지난 9일 하루는 서화반 일곱 명을 포함한 10여명이 사회 참관을 하고 왔습니다. 그날은 마침 장마철 속의 개인 날이어서 물먹은 성하의 활엽수와 청신한 공기는 우리가 탄 미니버스의 매연에도 아랑곳없이 우리들의 심호흡 속에다 생동하는 활기를 대어 주는 듯 하였습니다.우리는 먼저 금산의 칠백의총을 찾았습니다.오후에는 먼지가 일고 자갈이 튀는 신작로를 한참 달려서 신동엽의 금강 상류까지 나갔습니다.실로 오랜만에 흐르는 물에 발을 담가보았습니다. 저는 까칠한 차돌멩이로 발때를 밀어 송사리 새끼를 잔뜩 불러 모아 사귀다가, 저만치서 고무신짝에 송사리, 새우, 모래무치들을 담고 물가를 따라 이쪽으로 내려오는 새까만 시골 아이들-30여년전 남천강가의 저를 만났습니다. 저는 저의 전재산인 사탕 14알, 빵 1개, 껌1개를 털어놓았습니다.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라던 이오덕 선생의 아이들이기도 하였습니다.15척 벽돌담을 열고 오랜만에 잠깐 나와 보는 "참관"은 저로 하여금 평범하고 가까운 곳에서 인생을 느끼게 하는 "터득의 순간"되기도 합니다._<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장마도 이제 끝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습하고 덥습니다.태풍도 남쪽에서 휘몰려 오려고 합니다.2017년의 여름. 너무 더워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날, 1979년 선생님의 여름이야기를 찾아 읽었습니다.여름징역에서 벗어나 강물에 발을 담근 그 날. 선생님께서는 전재산을 아이들과 나누셨네요. 사탕 14알, 빵 1개, 껌1개. |
| 2017. 07. 28. 샘터찬물 편지 - 39 |

무더위 속에서 "무더운 여름에 옆 사람과 살을 맞대고 붙어서 잔다는 것은
고역입니다. 당연히 옆 사람이 미워집니다. 마찬가지로 자기도
옆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옆 사람의 죄가 아니고 고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옆 사람을 증오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 절망적인 것은 자기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에 증오를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중 략 - "사회의 생활환경도 열악하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에서도 버스나 지하철은 물론이고 교육, 주거, 주차 등 좁은 공간을 서로 다투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부딪치고 증오하고, 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서민들의 생활입니다. 그러나 교도소처럼
동일한 표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때마다 다른 사람, 다른
대상과 충돌합니다. 표적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충돌을 야기하는 구조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_<담론> 중에서 습한 장마와 함께 무더위가 찾아왔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계곡, 시원한 파도소리가 그리운 계절입니다. 쉽게 떠날 수 없는 도심 한
복판에서 더위를 이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에어컨을 켜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우리 주변엔 선풍기조차 없는 이들도 있고, 손쉽게 켜고 있는
에어컨 실외기가 내뿜는 열기는 주변을 더욱 덥게 만듭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곰을 볼 수 없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경고가 겹쳐집니다. 무엇이든 과잉 소비를 조장하는 문명의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밀려오는 무더위에 오늘도 에어컨 버튼을 누르고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정자나무 한 그루가 그립습니다. 내년
봄엔 더불어 손잡고 느티나무 한 그루 꼭 심어야겠습니다. |
| 2017. 07. 21. 샘터찬물 편지 - 38 |

2017. 07. 21. 샘터찬물 편지-38 몸 움직여 "몸을 움직여 사는 사람은 쓰임새가 헤픈 반면에, 돈을 움직여 사는 사람은 쓰임새가 여물다고 합니다. 그러나 헤프다는 사실 속에는 헤플 수밖에 없는 대단히 중요한 까닭이 있습니다. 첫째, 노동에 대한 신뢰입니다. 일해서 벌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인간관계입니다. 노동은 대개 여럿이 함께하는 것이어서 인간관계가 끈끈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일하고 더불어 써야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몸 움직여 사는 사람이 헤프다는 것은 이를테면 구두가 발보다 조금 크다는 합리적인 필요 그 자체일 뿐 결코 인격적 결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헤프다는 것은 스스로의 역량을 신뢰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인 품성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처음처럼> 중에서 더운 여름날 동료들과 친구들과 시원한 치맥 한 잔 하고픈 '헤픈' 사람들에겐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좋은 얘기입니다. 이렇게 보면 사람의 행동에는 이유 없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행동 저변의 이유를 알아내는 노력이 타인을 이해하는 첫 걸음이겠지요
폭염 속 지친 마음 '헤픈' 웃음 나누며 함께 이겨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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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7. 14. 샘터찬물 편지 - 37 |

동굴우상 "동굴에서 사는 사람은 동굴의 아궁이를 동쪽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처지에서 스스로의 생각을 간추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주관의 양을 조금이라고 더 줄이고 객관적인 견해를
더 많이 수입하려고 합니다. <중략> 그러나 그럴 경우 우리가 발 디딜 수 있는 객관적 입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을 온당하게 키워 가기 위해서는 저마다 그 '곳'의 고유한 주관에 충실함으로써 오히려 객관의 지평을 열어가는 순서를 밟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경로야말로 객관이 빠지기 쉬운 방관과 도피로부터 우리의 생각을 옳게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문제는 각자가 발 딛고 있는 그'곳'의 위치와 성격입니다. 동굴의 우상을 벗어나는 방법은 결국 동굴의
선택 문제이며 참여점(entry point)의 문제로 환원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논어』에 "인(仁)에 거(居)하는 것이 아름답다"(里仁爲美)고 한 까닭이 이와 같습니다.' _<처음처럼> 중에서 어쩔 수 없어 동굴을 바꾸지 못한 경우라면 자기가 거하는 동굴의 성격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으로도 동굴의 우상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을지...
무더운 여름 새로운 민주정부에게 그 동안 쌓였던 것들이 또는 과거 정부하에서라면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일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납니다. 지켜보는 나의 입장이 '객관'의
입장에 자꾸만 서려하는 것을 느끼며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이래저래 많이 더운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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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7. 06. 샘터찬물 편지 - 36 |

샘 우리 마을에는 올해같이 심한 가뭄에도 끄떡없는 깊은 우물이 있습니다. 지심을
꿰뚫고 흐르는 큰 물줄기와 만난 이 샘에는 언제나 싱싱하고 정갈한 생수가 보석처럼 번쩍이고 있습니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아니 그쳐서 내를 이루어 바다에 가나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에서 장마가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예년과는 다르게 마른 장마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손님처럼
소나기처럼 잠깐 다녀가는 비가 안타깝습니다. 오늘도 매스 미디어로 전해 듣는 뉴스는 팍팍하고 어지럽습니다. 무더위에
시달리고 미사일에 놀라며 수많은 사건사고를 듣고 있는 이 여름을 견딜 일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지심을 꿰뚫고 흐르는 싱싱하고 정갈한 샘물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깊은 우물같던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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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6. 29. 샘터찬물 편지 - 35 |
무감어수 감어인 (無鑒於水 鑒於人)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성장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바깥에서 얻어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씨를 뿌리고 가꾸어야 하는 한 그루 나무인지도 모릅니다.
옛 사람들은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라고 하는 ‘무감어수(無鑒於水)’의 경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만 그것이 곧 표면에 천착하지 말라는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감어인(鑒於人)’.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과의 사업 속에 자신을 세우고 사람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비추어
보기를 이 금언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어깨동무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살아가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무야 나무야> 중에서
유교적 문화가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일상적으로 남을 의식하고 살아가기를 요구 받는 사회에서 적합한 메세지인가
싶기도 합니다만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감어인'의 긴장과 불편함이
우리를 키우는 양식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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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6. 22. 샘터찬물 편지 - 34 |
2017.06.22.
샘터찬물 편지-34 노동과 삶 "창살 밖으로 봄볕을 받은 마당에 파릇파릇 봄 싹들이 돋아나는
걸 바라보고 있으면 호미 들고 일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우리 사회의 열악한 노동 현실 때문에 노동에 대한 관념이 부정적입니다만 사실은 노동하지 않는 생명은 없습니다. 더 정확하게 정의한다면 노동은 ‘생명의 존재 형식’입니다. 한 송이 코스모스만 하더라도 어두운 땅속에서 뿌리를 뻗고 계속해서 물을 길어 올리는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마리 참새인들 다르지 않습니다. 노동은 생명이 세상에 존재하는
형식입니다." <담론> 중에서 노동은 생명이 존재하는 형식, 그 자체임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자본주의
사회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노동을, 삶의 양식을
쉽사리 내어놓지 않습니다. 요즘 공공일자리를 늘려 청년실업을 줄이겠다는 추경안이 제도 요건에 맞지 않는다며 가로막혀 있습니다. 일하지 못해 자신의 삶을 거부당하거나 포기하는 이들이 없기를, 그들의
처지와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것은 시대의 요구이자 정치인의 책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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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6. 16. 샘터찬물 편지 - 33 |
2017.06.16.
샘터찬물 편지-33 "대문을 열어 놓고 두레상을 둘러 앉아 한솥밥을 나누는 정경은 지금은 사라진 옛그림입니다 솥도 없고 아궁이도 없습니다 더구나 두레상이 없습니다 한솥밥은 되찾아야 할 삶의 근본입니다 평화는 밥을 고르게 나누어 먹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쌀을 고루 나누어 먹는 것이 평화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 처음처럼> 중에서 지난 주말에는 비를 기다리다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텃밭에 물을 여러번 주어가며 고구마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너른마당' 식구 몇몇이 모여 파전을 구워 막걸리 한 잔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 가면서, 거창한 지식으로 상대를 설득하는것 보다는
그냥 밥 한 그릇 나누며, 막걸리 한 잔 돌리며 마음을 서로 나누는 것이 훨씬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요즘 자주 느낍니다. 새 정권이 들어서서 예전에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작은 희망들을 가슴에 품어 봅니다. 시급 1만원이 법제화되어 '없이
사는 사람들'도 훨씬 더 편하게 서로에게 밥 한 그릇 나누며 살아가는 세상을 꿈꿔 봅니다. 남과 북이 개성공단을 하루라도 먼저 다시 문 열어 밥 한 그릇 함께 나누다 보면 이 땅에 평화가 깃드는 날도 꿈꿔 봅니다. 우리네 가슴에 두레상, 아궁이, 한솥밥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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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6. 09. 샘터찬물 편지 - 32 |

현실과 이상의 영원한 갈등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나는 굴원의 이 시를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라는 의미로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상과 현실의 모순과
갈등은 어쩌면 인생의 영원한 주제인지도 모릅니다. 이 오래된 주제에 대한 굴원의 결론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가장 정갈하게 간수해야 하는 갓끈을 씻고 반대로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 것입니다. 비타협적 엘리트주의와
현실 타협주의를 다 같이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획일적 대응을 피하고 현실적 조건에 따라서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굳이 이야기한다면 대중노선을 지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감옥에서 만난 노선배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고 실천은 우경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좌경적이라는 의미는 ‘신목자필탄관(新沐者必彈冠) 신욕자필진의(新浴者必振衣)’처럼 비타협적인
원칙의 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경적이라는 의미는 맑은 물에는 갓끈을 씻고 흐린 물에는 발을 씻는다는
현실주의와 대중노선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오래된
과제를 마주하는 느낌입니다. <강의> 중에서 작금의 시국을 바라보는 키워드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굴원 이래 2000년을 넘은 숙제에 무엇이라 덧붙일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다만 선생님의 글을 읽어보고 오늘을 생각할 따름입니다. |
| 2017. 06. 02. 샘터찬물 편지 - 31 |

글씨 속에 들어있는 인생.
학교도 들기 전의 어린 때 할아버님 앞에서 유지를 펴고 붓글씨를 배우던 제가 이제 막상 할아버님의 비문을 쓰려고, 그것도 옥중에서 붓을 잡으니 할아버지의 추억과 함께 세월이 안겨주는 한아름의 감개가 가슴 뻐근히 사무칩니다.
써놓은 비문을 며칠 후에 다시 펴보았더니 자획의 대소, 태세가 고르지 못하고 결구도 허술하여 마치 등잔을 끄고 쓴 한석봉의 글씨 같아, 저도 어머님께 꾸중 듣는 듯한 마음입니다. 몇 군데 다시 써서 덧붙이기도 하고 조금씩 고치기도 하였습니다.
글씨도 그 속에 인생이 들어 있는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어떤 때는 글씨의 어려움을 알기 위해서 글씨를 쓰고 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지난 토요일 서여회 사람들이 이제껏 연마해온 솜씨를 발휘하여 부채를 만들었습니다. 마치 작품전을 준비할 때처럼 정성을 다해서 부채에 덕담을 쓰고 그림도 그려 나누어 가졌습니다. 옛부터 단오선이라고 단오에 부채를 나누던 관행이 있었답니다. 토요일 오후에 남산 서실에 모여 글씨를 쓰다보면 우이체 속에 담긴 선생님의 깊은 인생을 한번 더 되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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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5. 25. 샘터찬물 편지 - 30 |
가슴에 두손 "사상의 최고 형태는 감성의 형태로 ‘가슴’에 갈무리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성은 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일차적이고 즉각적인 대응이며 그런 점에서 사고思考 이전의 가장 정직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성적 대응은 사명감이나 정의감 같은 이성적 대응과는 달리,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이러한 정서와 감성을 기르는 것은 인성人性을 고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면서 최후의 방법입니다. 말 잘하고 똑똑한 사람보다는 마음씨가 바르고 고운 사람이 참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 _《강의》중에서 "한낱 목련이 진들 무에 그리 슬프랴 " 중학교 3학년이던 시인의 싯구가 늘 생각나는 비극의 5월이다. 이 슬픈 오월이 한 사람의 눈물로 위로가 되는 경이로운 경험을 했다. 필시
그는 가슴으로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눈물은 그곳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그가 하려는 일들을 지지하고 함께하고 싶다. 그러면
내 가슴에도 예전 어느때처럼 애정이 쌓여 더
'인간'이 되어갈 것 같기 때문이다. |
| 2017. 05. 18. 샘터찬물 편지 - 29 |

분단의 벽 “베를린의 슈프레 강가에는 강을 따라 2킬로미터에 달하는 분단 시절의
장벽이 남아 있습니다. 그 장벽에는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환희를 새긴 수많은 글과 그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글과 그림들은 지난 세월 독일인들이 치러야 했던 분단의 아픔과 희생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나는 장벽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읽어 보았습니다. “사상은 하늘을 나는 새들의 비행처럼 자유로운 것이다.” 분단이란 땅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늘을 가르려고 하는 헛된 수고임을 깨닫게 하는 글입니다.” “우리의 통일은 이산(離散)과 증오(憎惡)를 청산하는 것일 뿐 아니라, 막대한
분단 비용을 청산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선진국 진입이 가능하다고 믿는 허상을 깨뜨리는 것이 먼저이어야 합니다. 한반도의
통일이 이러한 정신적, 물질적 소모(消耗)를 청산하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나아가서는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20세기의 모순을 창조적인 다양성으로 지양(Aufheben)하는 어떤 모범을 만들어 내는
것이 된다면 더욱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_《더불어 숲》중 에서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변화를 염원하는 1천700만 촛불의 민심으로 새 정부가 출범하였습니다. 그러나 들끓는 민심
속에서도 태극기와 성조기를 휘두르고 시대정신을 외면하는가 하면, 어김없이 북풍과 색깔론이 펼쳐졌습니다. 그 이면엔 지난 반세기 우리를 짓눌러온 분단의 벽, 이념의 벽이
공고히 자리잡고 있으며,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당장의 적폐들은 새 정부가 하나 둘 풀어가겠지만, 21세기 지구상의
마지막 분단국가의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겠는지요. 지난 몇 개월간 활활 타올랐던
촛불, 이제는 우리 삶 속에서 긴 호흡으로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이념의 벽을 허무는 새물결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
| 2017. 05. 12. 샘터찬물 편지 - 28 |

춘풍추상(春風秋霜)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관대하게 하고 자기를 지키기는 추상같이
엄정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을 돌이켜보면 이와는 정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남의 잘못은 냉혹하게 평가하는가 하면 자기의 잘못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합니다. 자기의 경우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전후 사정을 잘
알고 있지만 남의 경우는 그러한 사정에 대하여 전혀 무지하거나 알더라도 극히 일부분 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의 형평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타인에게는 춘풍처럼 너그러워야하고 자신에게는 추상같이 엄격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대화와 소통의 전제입니다."
_<신영복의
언약> 중에서 큰 이변없이 대선이 끝나고 환희와 아쉬움이 골목골목에서 들려옵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지지 후보에게 투표를 했을 것입니다. 서로 다른 선택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은
대화와 소통입니다. 대화와 소통이
가능하면 우리의 민주주의도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궁극에
처하면 변화하고 변화하면 열립니다. 열려 있으면 오래 갑니다. 변화와
소통이 생명입니다" 여러 가지로 궁한 처지라 변화를 선택했습니다. 변화가 잘 이루어져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누군가 들려준 건배사입니다. "믿고, 기다리고,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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