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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샘터찬물 편지 76번째(2018.04.20)/침묵과 요설(饒舌) 2018-04-20 14:4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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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요설은 정반대의 외모를 하고 있으면서도 똑같이 그 속의 우리를 한없이 피곤하게 하는 소외의 

문화입니다. 나는 이러한 교도소의 문화 속에서 적지 않은 연월(年月)을 살아오면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침묵을 열고 요설을 걷어낼 수 있는 제3의 문화를 고집하고 있는 많지 않은 사람 속에 서고자 

해왔습니다.

 

불신과 허구, 환상과 과장, 돌과 바람, 이 황량한 교도소의 문화는 그 바닥에 짙은 슬픔을 깔고 있기 

때문이며, 슬픔은 그것을 땅 속에 묻는다 할지라도 '썩지 않는 고무신', '자라는 돌'이 되어 오래오래 

엉겨붙는 아픔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3의 문화는 침묵과 요설의 어중간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믿습니다. 버리고 싶은 마음, 잊고 싶은 

마음을 정갈히 씻어 볕에 너는 자기 완성의 힘든 길 위의 어디쯤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Muteness and talkativeness appear to be opposite things, but they belong to the same 'alienating 

culture' that exasperates us. Living quite a number of months and years in this prison culture, 

I keep trying to place myself among the small group of people who seek another culture of 

opening up the silence and damping down the garrulity.

 

Distrust and falsity, illusion and exaggeration, in the form of stone and wind, cloak the lives in 

this prisonhouse. The bottom there is filled thick with grief. Grief which, like rubber shoes, will not rot away 

even buried underground and keep inflicting pains on us for numberless days.

 

I do not suppose that the new culture is located somewhere between silence and garrulity. 

I expect to find it somewhere on the road to the self realization, where we launder our regretful 

and pain-stricken minds and hang them out in the sunshine to dry. [tr. by Orun Kim]

 

_<감옥으로부터의 사색>중에서

 

우리를 가두기위해 저들을 가둔 것이라는 어느 사회학자의 말이 이해되는 것처럼 교도소 안밖의 삶이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픔 많은 4월입니다.

'침묵과 요설'을 넘어 이젠 별이된 저 꽃같은 아이들을 가슴에 품는 것이 사람과 인간이 걸어가는 

길이라 생각합니다.